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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점서재]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 김나연

서재

by 이정록_06 2020. 10. 22.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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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을 보자 화들짝 놀랐다. 전에 읽은 책 ‘꽃 같거나, 좆같거나’ 이상으로 나를 자극했다. 이 책을 들고 있는 나의 모습을 누가 보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다가 책을 훔치고 나온 것처럼 급하게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호기심이 부끄러움을 몰아냈다.

 

 

‘침대에서 독서와 섹스를 함께 할 남자를 찾습니다.’라고 할 정도로 작가는 적어도 이 책만큼은 자신의 솔직한 생각을 담아냈다. 그녀가 존경하는 교수에게 찾아가 차마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책 제목만 보면 온통 책에 ‘섹스’가 나올 거로 생각하기 쉽다. 분명 ‘야함’이 책을 지배하고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런 부분은 일정한 섹션에 짧고 신선하게 실려 있다. 은밀한 자신의 성적 취향과 성생활을 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 알아도 크게 개의치 않아 보였다. 만약에 부끄럽거나 걱정을 했다면 책에서 과감히 뺐을 것이다.

 

 

‘가까워지고 싶은 남자가 늦은 밤에 건네는 맥주. 맥주 거품만큼 폭살 거리는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는 여자가 과연 세상에 존재하겠는가? 하지만 배고프다고 아무거나 먹어선 안 됩니다. 아무거나 먹으면 나중에 탈 나니까 가려 드세요.’ 아슬아슬 중의적으로 표현했지만, 읽자마자 작가의 의도를 이해했다. 밤과 술이 있다면, 역사는 써내려 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우리는 서로의 가장 은밀한 곳까지 들여다보았음에도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헤어졌다’는 그냥 슬펐다. 

 

‘저는 대체로 친절합니다. 그게 예의라고 배워서요. 호감이라고 생각하지 말아 주세요. 제가 무례한 인간이기 싫어서 친절한 거니까요.’ 나 역시 그러하다. 상대를 존중하기에 적당한 친절을 베푼다. 최소한의 친절을 통해 어느 순간 매너 좋은 사람이 되었다. 단, 그 친절함이 호감으로 오해해서 서로 불편한 상황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

 

 

이 책에서 또 다른 신선함을 느낀 것은 바로 각주였다. 일단 각주가 재밌었다. 안 읽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더는 글로 써내려갔다간 장황한 내용을 밑으로 끌어내려 왜 그런지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가 미국에서 친척 할머니(a.k.a 마귀할멈) 때문에 고등학교 졸업 후 비자 문제가 발생해 미국 대학 입학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자신의 삶을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신이 주도적으로 끌고 나갔다.

 

 

‘섹스’가 아닌 ‘우울’에 초점을 두고 있다. 작가는 한강을 내려다볼 수 있으며, 집에 피아노까지 있을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었다. 그 행복은 얼마 못 갔다. 빚을 갚지 못해 집안에 들이닥친 사람들, 부모님의 이혼, 보이지 않은 벽이 생긴 어머니와의 관계, 순탄치 않은 미국 생활(심신이 약한 막내 삼촌을 간호)은 그녀가 유독 우울하지 않았나 싶다. 특히 어머니와의 좋지 않은 것이 우울이라는 감정을 사랑보다 먼저 느꼈을 것 같다.

 

 

‘현명한 사람이 된다는 게 정확히 어떤 사람이 되는 건지는 몰라도 무엇이 현명하지 않은 행동인지는 알고 있다. 그걸 지워나가면 되겠지.’

 

‘감사는 내게 넘치는 걸 주는 게 아니라 상대가 필요로 하는 걸 주는 것. 위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

 

감탄을 부르는 문장들이 있어서 잊고 싶지 않았다. 작가의 마지막 인사처럼 우리 다음에 만나요. 만나서 더 많은 얘기 해요. 더 은밀하고, 야한 내용을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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