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온점서재] 뭉클하면 안 되나요? / 마쓰다 미리

서재

by 이정록_06 2020. 11. 4. 11:00

본문

728x90
반응형

 

 

마스다 미리 씨는 참 뭉클한 순간이 많았다. 어리숙한 행동, 사소한 습관, 엉뚱한 표정과 같은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만큼 관찰력도 좋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듯하다. 다만, 드문드문 깜짝 놀랄만한 야한 농담으로 찬물을 끼얹듯 사라질 뻔했다.

 

 

왼손잡이의 남자는 여자 친구와 잠자리에서 그녀의 오른쪽 가슴을 먼저 만질 거라는 생각과 체격 좋은 남자가 엄청난 음식을 먹으면서 밤에 그 힘을 여자 친구에게 온전히 쏟을 거라는 생각은 흠칫했다.

‘뭉클하다’의 뜻은 슬픔이나 노여움 따위의 감정이 북받치어 가슴이 갑자기 꽉 차는 것을 의미한다. 책에서 슬픔이나 노여움으로부터 느끼는 뭉클함보다 귀엽거나 감동하고 애틋하므로 뭉클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더 많았다.

 

 

책은 그림보다 글이 많았다. 그렇다고 아주 긴 글이 아니라 뭉클했던 일을 짧게 다룬 글로 이뤘다. 중간에 급하게 마무리되어 싱겁기도 하고, 아쉬웠다. 그 허전함은 다른 것으로 채웠다. 책을 읽는 동안 ‘나에게도 뭉클한 순간은 언제였을까?’라고 질문하고 답을 찾으려 생각했다.

 

 

내가 처음 ‘뭉클’이란 감정을 알게 되었을 무렵인 고등학생 때였다. 다른 반의 친구들은 마쳤는데 우리 반에 작은 사건이 일어나 집에 가지 못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미안함에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했다. 내 말에 친구들은 유유히 사라졌다. 30분이 지나서야 나는 집에 갈 수 있었다.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 혼자 걸어가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혹시나 하고 쳐다봤더니 친구들이 집에 가지 않고 끝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뭉클함이 내 마음을 휘저었다.

 

 

반대로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뭉클함을 전해준 적이 기억났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것이 뭉클함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외삼촌이 결혼할 숙모를 처음 만난 날,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고 집으로 가는 길에 외삼촌은 나에게 게임 CD를 사준다고 했다. 그 말에 매우 기뻐서 예전부터 사고 싶은 CD를 고르고 싶었다. 그러나 앞으로 돈 들어가는 곳이 많을 거라며 비교적 저렴한 다른 게임CD를 골랐다. 삼촌의 두 눈에서 뭉클함이 반짝 빛났다. 아 물론, 이건 내 자랑이기도 하다.

 

 

처음에 작가에게 ‘뭉클한 순간도 참 많다’라고 억지로 만드는 거 아니냐며 그녀를 의심했다. 막상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녀만큼 나도 뭉클한 순간이 제법 많았다. 그녀와 작은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것들로부터 유독 뭉클함을 갖고 있는 것이다. 당연할 수도 있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뭉클한 순간이 많다. 폐지를 리어카에 잔뜩 싣고 천천히 끌고 계시는 어르신의 모습, 아들에게 맛있는 밥을 챙겨주시는 어머니의 모습,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 사랑스러운 조카가 나를 안아줄 때, 매형이 몰래 용돈 쥐여줄 때, 책을 읽고 아직 여운이 가시지 않을 때, 아픈 여자 친구가 곤히 자는 모습, 내가 만든 음식을 부모님께서 맛있게 드시는 모습, 산 정상에 올라왔을 때, 내가 쓴 편지를 읽고 행복해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 고양이가 좋다며 나에게 비빌 때, 내가 좋아하는 팀이 경기에 져서 선수들이 경기장에 쓰러져 있는 모습, 여자 친구가 내 손을 먼저 잡아주거나 갑자기 나를 안아줄 때 뭉클하다.

 

 

이전에 내가 지금처럼 뭉클하다는 말을 자주 언급한 적이 있었던가? 이 책을 통해 구석에서 먼지 쌓여있는 감정을 하나 찾아 흐릿해진 추억을 되새겼다. ‘미스다 마리’의 책은 가볍게 읽지만, 그 후에 사색할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728x90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