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조용하게 읽어보려고 했지만, 유난히 집중이 안 되어 지긋이 책을 덮었던 기억이 있다. 진득하게 앉아서 읽지 못한 내 의지가 부족한 거였는데 이 책이 재미없다는 인식만 남기고 말았다. 후에, 도서관에 우연히 있어서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단막극을 연상시키듯 6가지 에피소드가 담겨있다. 우리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 문제들을 밝게 잘 풀어놓은 유쾌한 소설이다. 다만, 각 에피소드마다 주인공이 다르므로 이름을 새롭게 알아가야 하는 귀찮음이 있었다.
여섯 가지의 이야기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누구보다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과 뒤에서 묵묵히 밀어주는 배려였다. 첫 번째 사연은 결혼 전, 집은 혼자만의 시간이 보장된 곳이었다. 결혼 후에는 아내의 전폭적인 내조에 부담스러워 집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런 고민은 쉽게 해결되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조용한 까페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냈더니 한결 가벼워졌다. 결국, 아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귀엽고 서툰 부부싸움을 하면서 서로 좀 더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 사연은 우연히 남편의 회사가 야유회를 하러 갔다가 남편이 다른 직원으로부터 무시를 받는 느낌을 받았다. 아내는 속상했지만, 모른 척하며 남편 기를 살리기 위해 점심을 직접 만들어줬다. 위로와 격려를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매일 다른 메뉴로 화려하진 않지만, 성의가 있어 보이는 “특색이 있는 심플한 도시락”을 만들었다. 평소 회사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남편도 자연스럽게 아내에게 말하면서 아내의 의도가 적중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자신감 넘치고 사람들에게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아내가 참으로 예뻤다.
세 번째 사연은 부모님께서 이혼을 할머니로부터 알게 되면서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녀는 어린 남동생에게 말하지 않고 그 고민을 친구들과 함께 나눴다. 그리고 다른 친구, 선생님, 자신과 약간 좋아하는 남자로부터 나만 이런 역경과 고난을 겪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 용기와 힘을 얻었다. 남동생도 부모님의 이혼을 벌써 눈치를 채고 있었다.
네 번째 사연은 남편이 아내에게 뜬금없이 UFO를 본 경험을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아내는 남편을 걱정하기 시작했고, 조심스레 미행까지 했다. 심지어 회사동료에게 물어봤는데 남편은 회사일 때문에 많이 힘들어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내는 남편을 욕한 사실에 미안했다. 아내는 UFO 사건을 통해 남편을 더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다섯 번째 이야기는 결혼하고 처음으로 맞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였다. 남편의 고향은 훗카이도, 아내의 고향은 나고야였다. 자신의 휴가일정을 정하고 어디부터 찾아뵐지를 의논했다. 그들은 편한 집에서 푹 쉬고 싶었고, 괜찮은 곳으로 외국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고 남편의 고향부터 방문하기로 했다. 나름 남편은 아내의 눈치를 봤지만, 생각보다 아내는 만족하고 즐거워했다. 아내는 은근히 남편 고향을 좋아했다. 남편도 아내의 고향에서도 흡족했다. 사뭇 반대되는 것들이 많아 충돌될 거로 생각했지만 부족한 것을 메워주면서 행복한 모습에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 이야기는 아내가 마라톤을 하면서 시작했다. 남편은 유명한 작가다. 아내는 남편의 자금을 관리했다. 그러다가 실수로 적잖은 돈을 잃게 되면서 아내는 남편의 눈치를 자주 보게 되었다. 이후로 그녀는 집 주변에서 홀로 달리기하면서 슬픔과 스트레스를 이겨냈다. 우연히 남편은 출판사 직원의 도움으로 마라톤에 참여할 좋은 기회를 아내에게 알렸다. 평소 대화가 없는 두 아들과도 이것을 계기로 가족끼리 똘똘 뭉치게 되었다. 42.195km의 마지막 종착지로 들어오는 아내를 바라보면서 남편은 아내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끼면서 책은 끝이 났다.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 “왜 뚜렷한 결말이 없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그렇다. 이 책에서는 명확하고 뚜렷한 결과가 없다. 이런 부분에서 일부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조금 아쉬워할 수도 있다. 적어도 나도 그랬다. 그 후의 일이 궁금했으니까. 근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스스로 그 마지막 부분을 상상할 수 있도록, 마지막 퍼즐을 독자가 맞출 수 있도록 작가가 의도한 것으로 생각했다.
“해답은 없다. 가족에게는 매뉴얼이 없다”의 문장으로 이 책을 소개하고 싶다. 다양하게 얽히고 복잡하게 꼬인 문제 속에 위험한 위기가 있다. 정답은 없지만, 이 책을 읽어봤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진심이 느껴지는 따뜻한 관심으로 문제는 풀릴 거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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