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정식 출판하기 전에 가제본용으로 받아서 읽었다. 우연히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았는데 한동안 읽지 못하고 책장에 한동안 잠들어 있었다. 읽어야 할 책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제야 책을 펼쳤는데 하루 만에 다 읽었다.
책을 읽기 전에 궁금해서 검색해봐서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어느 정도 짐작했다. 세 여성의 기구한 삶을 그린 소설이라 밝은 분위기보다 어두운 면이 많았다.
스미타, 줄리아, 사라의 이야기는 큰 부분을 쪼개 순서대로 구성되어있다. 짧은 형식의 글이라 높은 집중력으로 빠르게 읽을 수 있었고 지루하진 않았다.
인도에서 하층민으로 사는 스미타, 이탈리아에서 집안 대대로 이어 온 작은 가발공장을 운영하는 줄리아, 캐나다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사라는 보이지 않는 운명의 붉은 실처럼 손가락에 매듭지어 연결되어 있었다. 스미타는 그의 딸과 함께 사는 곳을 도망쳐 나와 비슈누 신에게 바칠 재물로 그녀들의 머리카락을 내놓았다.
모녀의 머리카락은 이탈리아 소도시에 있는 줄리아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정을 거쳐 새롭게 태어난 가발이 캐나다에서 유방암으로 투병하느라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져버린 사라의 눈을 사로잡았다. 머리카락이 이 세 여성을 하나로 묶는 과정을 최대한 자연스러웠다. 억지스럽게 끼워 맞추지 않았고 어색하다고 생각이 나지 않을 만큼 잘 풀어나갔다.
세 여성의 기구한 삶은 슬프고 특별했다. 스미타는 똥을 직접 손으로 긁어서 파내는 일을 했고 그녀의 남편은 쥐를 잡으면서 어려운 생계를 이어갔다. 현실에 안주해버리면 그녀의 딸도 자신처럼 이런 일을 평생 하고 말 것이다. 한 푼 두 푼 어렵게 모은 돈을 딸이 곧 다닐 학교 선생님에게 바쳤지만, 돌아오는 건 매정한 매질에 상처에 찢긴 옷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줄리아도 그녀의 도시에 유일한 가발 공장이었다. 그녀는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그녀밖에 없어 결국 꿈을 접은 상태였다. 어느 날, 그녀의 아버지가 불의의 사고로 목숨이 위험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설상가상으로 공장을 더는 운영을 할 수 없고 집을 담보로 해놓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어머니는 동네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추천하지만, 줄리아는 강하게 거부했다. 이미 그녀가 사랑하는 외국 남자가 있었다. 줄리아는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려고 결심했다.
사라는 유능하고 완벽한 변호사였다. 그러나 그녀의 어머니처럼 유방암을 선고받았다. 적어도 회사에서 눈치채지 못하게 완벽하게 숨기고 있었으나, 병원에서 동료 변호사를 만나면서 갑자기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갔다. 이미 소문이 퍼져 더는 그녀가 의지할 곳이 없도록 절벽까지 내몰았다. 아무도 그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지 않았다. 건강도 악화하여 회사를 그만두면서 크게 절망했다.
이렇듯 세 여성은 갑작스레 찾아온 위기에 당혹스러워했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둠 속에서 그들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그러나 곧 그들은 위기를 기회로 맞바꿨다. 스미타는 그녀가 갈 목적지에 곧바로 가지 않고 과거의 나쁜 기운을 없애고 좋은 기운을 얻기 위해 신이 모신 곳으로 갔다. 줄리아는 헤어지려는 남성의 조언을 바탕으로 인도에서 머리카락을 수입해서 사업을 이어가기로 했다. 사라는 가족들의 사랑으로 무기력했던 모습에서 암을 이겨내겠다는 강한 의지로 탈바꿈시켰다. 그녀들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뜨거운 열정으로 극복하는 모습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세 여성 중 스미타의 이야기가 더욱 안타까웠다.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스미타의 시대배경이 최소 1960년대라고 생각했었다. 화장실이 없어서 길 한복판에 대소변을 해결하고 문명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받지 못하는 열악한 지역에서 비인간적으로 사는 것이 믿을 수가 없었다. 여전히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지는 차별에 순응하는 사회에서 어떻게든 딸과 함께 해보려는 과정에서 격한 감동을 하였다. 두 여성에 비해 환경과 제도가 내가 읽어 본 소설, 내가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최악이었기 때문에 더욱 생각이 났다.
도전에 있어서 겁을 먹고, 두려워서 망설이거나 포기한 적이 있는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뭔가 분명히 느끼는 것이 있을 것이다. 배수진으로 적을 격파하겠다는 결의에 찬 병사처럼 굳세게 도전해보자. 결과가 어찌 되었든 간에.
올해는 작년보다 “여성”을 주제로 한 책을 많이 읽었다. “책을 많이 읽었다”라는 만족감보다 그 책 안에 있는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현실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느꼈다. 성차별, 사회
제도에서 오는 차별로 여전히 우리는 서로 덜 존중하고, 덜 배려하고, 덜 이해하고 있다.
스미타의 이야기에서는 직업과 신분이 대를 이어 내려오는 제도적 차별, 여성에게 가혹한 처벌을 내리는 성차별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었다. 줄리아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남자에게 시집을 가기를 바라는 어머니의 바람, 보수적인 지역 사람들의 고리타분한 시선에 거부를 느꼈다. 사라는 회사 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피해를 받는 부분에서 성차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책에서 주는 메시지를 가볍게 회피하거나 쉽게 넘어가지 않았으면 한다. 이 책에서 좌절보다 희망을, 갈등보다 화합을, 슬픔보다 감동을 꺼내 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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