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에쿠니 가오리”의 4번째 소설을 읽었다. 작가의 특유의 편안한 분위기와 천천히 흐르는 전개 때문에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책의 주인공은 나와 비슷한 나이의 여성으로 직업은 화가였다. 여동생은 있지만, 오래된 작은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종종 찾아오는 유부남 남자친구와 자유분방하게 연애를 하고 있었다. 일본 책에서도 유부남과 연애하는 여성이 종종 볼 수 있는 점이 신기했다. 우리나라의 드라마에서 보는 불륜의 모습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다르게 느껴졌다. 불륜이라 함은,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당연히 가득하여야 하는데, 일본 소설에서는 청춘 영화처럼 아름답진 않아도 거북스럽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 나한테는 좋았다.
주인공은 현재 자신의 삶을 만족하면서 살고 있다. 그러나 간혹 그런 상황을 불안해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다양한 술을 마실 수 있고, 자신의 그림을 전시할 수 있는데 왜 그런 불안을 느끼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충족된 절망 속에서“ 라는 글을 읽고 쉽게 다음 장으로 넘기기 힘들었다.
그녀는 이미 충분히 행복한데 불안한 것은 과거의 추억, 그리고 불완전한 사랑 때문일 것으로 생각했다. 책 곳곳에 생전에 부모님과 함께했던 추억을 회상했었다. 글자마다 알 수 없는 그리움과 남자친구가 채워줄 수 없는 외로움이 묻어났다. 또한, 그녀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느닷없이 이별을 고했다. 이미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자는 먼 훗날 이곳의 생활을 정리하고 조용한 섬에서 그녀와 함께 살 것을 말했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것을. 뜬금없는 이별이었지만 그것은 그녀가 아마 애가 있는 남자에게 할 수 있는 결정이었다. 그러나 그 이별은 엄청나게 짧았다. 식음을 전폐하다가 병원에 입원한 그녀 옆에 그 남자가 있었다. 다시 재회하고 다음에 여행 갈 곳을 정하며 나름 행복하게 이야기가 끝이 났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분위기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읽는 게 너무 편했다. 아마 작가의 성향이 나의 성향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20대에는 단지 최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는데 30대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것이 인생의 목표 또는 성공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외향적인 면보다 내향적인 면이 더 좋고, 겉으로 드러내는 결과보다 꿋꿋이 갈고 닦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과시보다 내가 나한테 인정받는 절제와 겸손이 소중하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점점 이 작가의 소설을 좋아진 것 같다.
이 책은 올바른 남녀 간의 연애를 보여주기도 했다. 서로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떤 것을 요구하지 않고, 각자의 생활을 존중하는 모습은 성숙한 어른들의 연애를 보는 것 같았다. 무심한 것 같으면서도 존중, 인정, 배려를 느낄 수 있었고, 그런 것들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
“웨하스 의자”는 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과자로 만든 의자였다. 그걸 보면 행복하다는데 그런 이유와 왜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는지 궁금했다. 마지막으로 마치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인의 삶에 잠시 들어간 것처럼 편하게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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