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 책 발전소에서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책을 이번에 읽었다. 일본 작가인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 여성 작가가 쓴 책이었다. 최근에 단편 소설을 자주 접했는데 이 책도 역시 그랬다.
책은 7편의 단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분위기는 어둡다. 밝은 면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감동적인 부분보다 작은 울림이 있다.
“쇼코의 미소” 17살에 만난 두 소녀는 30살이 되어서 만났다. 두 소녀는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점, 할아버지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고 있다는 점이 비슷했다. 교환학생으로 온 '쇼코'는 일본에 돌아가서도 '소유'와 할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관계를 이어갔다.
'소유'는 유학하면서 우연히 '쇼코'가 도쿄에 가지 못하고 고향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후 '소유'는 '쇼코'의 집에 갔지만, 옛날의 '쇼코'가 아닌 다른 모습에 실망했다. 또, 세월이 지나, '소유'는 그녀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장례식장에서 '쇼코'를 만났다.
아직까지 이 책에서 '쇼코의 미소'의 의미를 찾진 못했고, 소설이 우리에게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다. 두 소녀는 할아버지의 존재를 재평가하는 부분이 좋았다. '소유'는 서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영화감독을 꿈꾸지만, 누구도 인정해주거나 지지해주는 사람이 점점 없어졌다.
느닷없이 찾아온 할아버지의 진심이 느껴지는 응원 한마디에 그녀는 지금까지 버텨왔다. '쇼코'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자유롭지 못하는 것이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으나. 자살시도까지 할 정도로 위험해질 때 할아버지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에 극복하고 지금껏 잘 지냈다. 친구 같으면서도 친구가 아닌 듯했지만, 친구가 될 수 있는 듯 열린 결말로 끝났다.
“씬짜오, 씬짜오”는 독일 소도시에서 한국인 가정과 베트남 가정의 일화를 다룬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가족은 낯선 도시에서 먼저 손을 내밀어 준 베트남 가정과 친밀하게 지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린 주인공이 칭찬받고 싶어서 던진 말로 두 가정의 관계가 급속하게 냉랭해졌다.
베트남 전쟁으로 주인공의 작은 아버지는 파병갔고, 그곳에서 사망했다. 베트남 가족은 친척들이 한국군의 학살당해 풍비박산이 났다. 베트남 전쟁이 두 가정에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그 후로 관계 회복을 하려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주인공이 성인이 되고 우연히 어릴 때 머물었던 도시에 방문하여 베트남 식구 중 한 명을 만났다. 그때 자신과 놀았던 그 친구의 소식도 듣게 되면서 이야기는 끝났다.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는 그저 슬펐다. 딸이 '엄마'와 '순애 이모'의 이야기를 써내려갔다. 엄마와 순애 이모는 어릴 적부터 가깝게 지냈다. “나, 정말 잘 살아보고 싶어. 지금처럼만, 이대로만 살아보고 싶어”라는 순애 이모의 바람대로 이뤄지진 않았다.
순애 이모의 남편은 간첩 혐의로 징역 15년을 구형받았다. 엄마는 불복하여 항소서를 쓰기도, 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결과는 뒤집지 못하고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 후로 엄마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 되었고 세상의 단단함이, 상식으로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벽이 엄마를 침묵하게 했다고 했다. 그 침묵을 깬 사람은 남편이 될 사람이었다. 그도 아픈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 서로 의지하면서 마침내 결혼했다.
이후 순애 언니와 엄마의 삶이 완벽히 달라졌다. 괜히 꺼냈다가 상처가 될 수 있는 과거 이야기를 묻어두고 형식적인 안부만을 물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만나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고 배려로 생각했던 마음이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다. 엄마의 생활이 안정화될수록 엄마는 순애 이모가 불편했다.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는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는데 후자가 엄마와 순애 이모와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형부가 출소하면서 이모를 본 적이 있었다. 누추한 곳에서 밝은 척을 하는 이모의 모습과 몸이 불편하여 거동하기 힘든 형부, 그곳에서 덤덤하게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했다. 형부가 실수로 오줌을 지리는 바람에 그 집에서 빨리 나왔다.
이모는 떠나는 엄마를 불러 세우고는 끝까지 잘 살라고 말했는데도 엄마는 이모의 모습과 그 집이 싫어했다. 그 뒤로는 둘은 남남처럼 살아오다가 엄마가 병원에서 이모의 모습을 봤다면서 그리고 딸은 이모가 유품으로 남긴 지갑 속에 두 소녀의 사진을 봤다. 딸은 이모가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병실까지 왔다는 엄마의 말을 확신하면서 이야기는 끝났다.
“한지와 영주”는 뭔가 엉성한 이야기였다. 지질학을 공부하는 영주는 느닷없이 현실에서 도피하는 식으로 프랑스의 한 수도원으로 왔다. 3년을 만난 남자친구와 이별하고, 가족들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몇 주간 머물겠다는 생각은 몇 달 동안 이어졌다.
수도원에서 흑인 청년인 한지를 만났다. 그는 수의사였으며, 가족 중에 여동생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침대에 누워서 지내고, 자신이 치료한 코뿔소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둘은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한지가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서 그들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생겼다. 이유도 없이 서로 멀리하는 등 갑자기 관계가 악화하였다. 주위 친구들도 그들이 걱정되어 물어보지만, 끝내 흐지부지 매듭을 짓지 못한 채 한지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마지막 날에 영주와 한지는 화해를 하려고 했지만,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녀는 한지를 생각하면서 쓴 일기장을 그에게 건네주지만 이내 다시 돌아왔다. 영주는 “우리는 그저 한 점에서 다른 한 점으로 이동했을 뿐이다”며 일기장을 꼭꼭 숨겨버리면서 이야기가 끝나는데 싱거운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뭔가 아쉽고 허전했다.
“먼 곳에서 온 노래”는 선배의 사랑을 뒤늦게 알아차린 후배의 이야기이다. 미진 선배는 러시아에서 공부하기 위해 떠났고 그곳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얼굴도 모르지만, 미진 선배와 알고 있는 외국인과 1년 동안 각자의 방식으로 편지를 보내는 와중에 10년 만에 소은은 페네르부르크에 가게 되었다.
한때 미진 선배와 친하게 지낸 폴란드계 율랴의 집에 머물면서 그녀에게서 받은 사진 몇 장을 가지고 소은은 선배의 흔적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로니에 공원에서 공연한 것, 홈커밍데이에서 졸업한 선배들의 장난감이 된 소은을 미진이 구해준 일, 노래패 동아리가 사라진 것을 회상했다. 미진 선배는 소은이 많이 아팠을 때 낯선 땅에서 적응하기도 힘들고 바쁠 텐데 아픈 그녀가 걱정되어 메일을 보내기도, 전화도 하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소은은 과거에 품었던 생각을 끄집어냈다. 당시에 그녀는 사랑하는 힘이 없었다. 이제야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었다. 선배를 마지막으로 만난 그 순간에도 선배에게 웃지 않았다. 한국에 온 선배에게 고맙다는 말도 전하지 못했다. 선배의 끝없는 관심과 조언이 고마웠지만 불쾌했다.
이 모든 감정을 쏟아내고 미진 선배에 대한 그리움과 고마움이 채워졌다. 율라에게 미진 선배가 소은을 얼마나 생각하고 아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녀와 율라는 한때 미진 선배와 거리를 잠시 뒀지만, 지금은 너무나 그리워하고 있다면서 다음 날, 미진 선배도 탔던 유람선을 타기로 하면서 이야기는 끝났다.
“미카엘라”도 조금 슬펐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 작은 미용실을 평생 운영하며 자식을 키워낸 어머니는 두 번째로 우리나라에 방문한 교황을 보러 서울에 갔다. 이번에는 딸에게 아는 지인의 집에서 머물 것이라며 말했지만, 사실은 딸에게 미안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딸도 평생 고생만 하는 어머니를 위해 그날만큼은 좋은 곳 둘러보며 즐겁게 보내실 거로 생각하고 평소와 다르게 연락도 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의 집 근처에 숙소를 잡고 싶었지만, 비싼 가격에 엄두를 못 내고 결국 찜질방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다.
한편, 딸은 어머니의 거짓말임을 알아챘다. 도무지 찾을 방법이 없는데 TV에서 어머니와 비슷한 모습을 한 사람을 발견하고 광화문으로 갔다. 찜질방에서 만난 할머니의 사연을 듣고 함께 광화문에 가기로 했다. 세월호에 탄 할머니 친구의 손녀가 목숨을 잃었다. 딸은 엄마인 줄 알고 광화문으로 갔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어머니도 광화문에 있었기 때문에 딸은 그곳에서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세월호를 배경으로 한 점, 어머니와 딸의 따뜻한 배려임에도 어긋나는 것이 참으로 아프고 감동적이었다.
“비밀”은 8년 동안 암과 투쟁하여 완치했지만, 이내 다른 곳으로 전이되어 더는 치료하기 불가능한 상태인 할머니의 이야기이다. 할머니는 어릴 적에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교 근처에도 발을 붙이지 못했다. 할머니가 한글을 가르쳐 준 것은 손녀인 지민이었다.
할머니는 지민을 아기 때부터 성심성의껏 키웠다. 그런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올바르게 자랐다. 지민이는 선생이 되고 싶었지만,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영숙과 그녀의 남편은 지민이는 중국으로 가서 선생이 되었다고 말숙에게 말한 것이 사실인 줄 알았다.
뒤에 갈수록 의심되는 부분이 있었다. 유리판에 끼여 있는 사진들과 사위의 급격하게 살이 빠진 모습, 술에 취한 사위가 대성통곡하는 모습, 지민의 생일에 차가운 사위의 반응, 지민의 옷장에 옷이 그대로 있는 점, 지민이 그곳으로 가서 종종 말자는 지민의 목소리를 환청을 들었다는 점으로 보아 지민이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거로 추측했다. 처음에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지민에게 쓴 편지로 이야기는 끝났다.
소설의 주인공은 '여성'이었고, 남성은 미약하게 그려졌다. 주인공들은 능동적인 것보다 수동적인 존재였다. 뒤늦게 뉘우치고 깨우쳤다.
이야기 중에 안타깝고 슬픈 것도 있지만 깊은 의미가 숨겨진 이야기도 있었다. 또, 짧은 소설이라 조금 구성면에서 아쉬운 곳도 있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표현했고 이야기를 풀어나갔으면 하는 부분도 있었다.
작가의 주옥같은 문장에 잠시 멈칫한 부분도 있었다. “사랑과 애착을 구별해야 한다.”, “자신의 삶에 책임져야 한다.”, “누군가를 조롱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삶은 얼마나 공허한가?”, “애도는 충분히 하되 그 슬픔에 잡아먹혀 버리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다.”, “순간순간마다 존재할 힘을 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몫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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