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더 유명한 '정약전'이 유배지에서 쓴 조선 최초 어류 전문 서적이다. 정약전이 단독으로 이 책을 만든 건 아니다. “영남산 청어는 척추가 74마디이고, 호남산 청어는 척추가 53마디입니다.”라고 말한 섬 소년 창대 등 많은 섬사람이 도움으로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었다.
정약전이 죽은 이후, 이 책은 뜯겨 벽지로 사용되고 있어서 하마터면 책은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유배가 풀린 정약용이 간신히 구해 제자에게 필사했다. 그는 선비 '이청'이 중국 문헌들을 참고하여 방대한 주를 달았다.
‘자산어보’는 비늘의 유무에 따라 인류와 무린류를 구분했다. 그리고 껍질이 단단한 개류와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잡류로 구성했다.
이 책의 영광스런 첫 번째 주인공은 '돗돔'이다. 2미터 길이에 300kg 무게에 달하는 이 녀석은 심해에서 주로 서식한다. 대면 또는 큰 민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살구꽃이 피면 조기 떼가 몰려온다. 조기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물속에 구멍 뚫린 대나무 통을 집어넣고 귀를 기울인다. 조기잡이는 입경업 장군이 처음으로 시작했다고 한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는 숭어는 의심이 많다. 정약전은 가숭어를 숭어로, 숭어를 가숭어로 바꿔 부르고 있다. 눈에 금테 안경 같은 노란색 테를 두르고 있으면 가숭어다.
청어는 냉수의 흐름을 따라 떼 지어 몰려다녀 수백 수천만 마리가 이동한다. 수컷의 정액으로 바닷물이 온통 젖빛으로 물드는 장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알이 뱃속은 물론 대가리까지 들어있을 정도로 엄청난 번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 상징적으로 신랑 각시의 잔칫상에 청어를 오려놓기도 한다.
상어는 낚싯줄이 이빨에 걸리면 따라 끌려온다고 했다. 상어 고기는 경기를 일으키는 아이의 병을 치료하는 데 효력이 있다. 또한, 상어의 간에서 기름을 찌내기도 했다.
날치는 도피, 사냥, 기생충 제거 때문에 난다고 했다. 정약전은 이 생선을 먹어봤는지 매우 싱겁다고 했다.
아귀는 탐욕스러움의 대명사로 알려졌다. 흉측한 외모로 버려지는데 이때에도 아귀찜은 없었던 모양이다.
넙치는 외눈박이가 아니라 눈이 한쪽으로 몰려있는 것뿐이다.
흑산도에 홍어를 빼놓을 순 없다. 수놈의 생식기는 두 개며, 암놈과 교미할 때에는 그 가시를 박고 교합한다. 색을 밝히는 대명사. 홍어를 씻은 물을 뿌려 두면 뱀이 얼씬 못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복어 중에 검복 암컷 한 마리의 독은 삼십여 명의 장정을 죽일 수 있다. 당나라 시인 소동파는 복어 고기는 죽음을 불사할 정도의 맛이라고 극찬했다. 복어를 '서시유'라고 부른다. 춘추시대 월나라의 절세미인이었는데 오나라 왕 부차는 월나라와의 전쟁에서 이긴 뒤 천하 미인과 사랑에 빠져 국정을 돌보지 않아 결국 월나라의 공격에 오나라는 멸망했다.
오징어가 내뿜는 먹물에 실제 붓을 찍어 글을 쓰기도 했다. 문어 다리를 국화꽃으로 비유했다.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고래를 쉽게 잡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 때 지나친 포경으로 살육되어 개체 수가 급감했다. 특히, 귀신고래는 어는 우리나라에서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수백 년을 장수하는 바다거북을 신성시했고, 흑산도의 참게를 소개하고 잡는 방법도 알려줬다. 그리고 이 책에서 16종이나 되는 게가 나온다.
전복은 등껍질이 더욱 거칠수록 진주를 품고 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는 참전복을 비롯해 말전복, 시볼트전복, 둥근전복, 오분자기 등 총 다섯 종의 전복이 서식하고 있다. 참전복을 제외한 네 종류의 전복은 제주도 연안에서만 난다.
성게는 밤송이 모양의 조개라고 표현했다. 성게는 불가사리, 해삼 등과 극피동물로 분류된다. 극피 동물은 몸이 석회질의 뼛조각으로 덮여 있는 동물을 말한다. 특히, 조개가 새로 변신하는 이야기를 넣어뒀다고 하는데 모양 때문이 아니라 섬에 사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겨 있지 않을까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라고둥 소리가 들려오는 곳에 막상 도착해보면 그 소리는 또 다른 곳에서 들려온다. 뱃사람들을 노래로 유혹해 파멸로 이끄는 신화 속의 요정 사이렌을 비유했다.
홍합은 밀물과 썰물의 흐름에 아주 예민하다. 밀물이 오면 미생물을 먹기 위해 입을 벌리고, 썰물이 지면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입을 다물어야 한다.
불가사리는 강력한 소화액, 엄청난 식욕과 회복능력을 갖고 있다. 어민들에게 그다지 사랑받지 않는 생물이나 날씨 예보 능력만큼은 정확해 간혹 도움이 되기도 한다. 날이 흐려질 것 같으면 떨어질 듯 말 듯 뿔 하나만을 돌에 붙인 채 몸을 뒤집는 습성이 있다.
정약전은 말미잘을 항문에 비유했다. 그것도 이질을 앓아 오래 설사를 한 사람의 항문으로 정확하게 표현했는데 실로 본 적이 있어서 이렇게 비유했는지 싶었다. 이번에 새로 알게 되었는데 말미잘은 식물이 아니라 강장동물이다. 해파리와 산호도 그러하다.
책 끝나기 전에 가마우지와 수조가 소개되었다. 가마우지는 먹잇감을 쉽게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중국 구이린과 일본의 이누야마 지방에는 가마우지를 이용한 낚시법이 있다.
수조는 발 하나는 매를 닮았고 다른 하나는 오리를 닮았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은 한번 사라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정약전이 소개한 김은 '돌김'이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만이 김 양식을 하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 먹는 모습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풍습이 생겼다고 했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를 분석한 사람이 보충 설명한 책이라 원문 전체를 볼 수 없었다. 이왕 읽은 김에 정약전이 쓴 것 그대로 보고 싶었다. 축구 경기를 10분 요약한 것을 본 것처럼 아쉬웠다. ‘자산어보’는 어류 백과사전임에도 그림이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로지 글만으로 묘사, 설명되어있다. 그만큼 정약전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려 노력했는지 알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정약전의 초상화를 봤는데 너무 무서웠다. 섬뜩하고 강한 인상이었다. 외모와 달리 인품은 온화했다. 옆 섬으로 유배지를 옮기는데 섬마을 사람들이 그를 붙잡았다. 그들을 설득시키느라 무려 1년이 걸렸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약전의 성품이 어떠하였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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