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가 을불에 이어 왕으로 즉위했다. 그가 바로 ‘고국원왕’이다. 왕자 ‘무’가 모용외를 죽임으로써 고구려를 구했다. 그러나 아직 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았다.
모용황은 자신에게 반기를 들 세력들을 제거함으로써 모용부를 장악했다. 이어 주변 부족들까지 복속하여 다시 고구려와 전쟁을 준비해나갔다.
모용황은 고구려의 하성을 불태우면서 전쟁이 발발했다. 수많은 백성과 토지 그리고 집을 잃었다. 그럼에도 고국원왕은 이미 시작된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고구려도 군사를 일으켜야 한다는 강경파의 의견을 무시하고 오히려 그들에게 사신을 보냈다.
‘고구려에 더는 전쟁은 없다’는 사유와 달리 아영이 본격적으로 나섰다. 모용황에게 밀려난 모용인을 포섭했다. 그를 이용해 모용황을 평곽성으로 오게 하였다. 고구려의 원군을 기대했지만, 오지 않았다.
치열한 전투 끝에 당연히 모용황이 승리했다. 평곽성에 승리에 취한 모용황의 군대의 함성이 가득했다. 주아영은 몰래 빠져나와 미리 잠복해 있던 왕자 ‘무’와 합류했다.
곧, 고구려군의 불화살로 평곽성은 불바다가 되었다. 성 안의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불길이 휩싸인 성을 보고 달려온 한수의 길목을 ‘무’가 막아섰다.
숙적 ‘모용부’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앞두고 순간에 사유가 백기를 들고 나타났다. 불길을 잡으라는 왕명에 모두가 당황했다.
몸의 절반이 타버린 모용황은 가까스로 목숨을 이어갔다.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본 주아영은 분노했다. 오로지 자신을 믿고 따른 자신의 사람들이 눈앞에서 차례대로 목숨을 잃었다.
태후는 스스로 북전에 유폐하여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평곽에서의 회군 이후, 사유는 변했다. 자신의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하여 독단적인 정책을 이어 나갔다.
무려 백여 개에 달하는 외성과 자성을 쌓을 것을 명했다. 이는 백성과 대신 어느 쪽도 환영받지 못했다. 이로써 고국‘원’왕은 모두에게 원망받는 존재가 되었다.
한편, 사유에게는 어린 아들이 있었다. 구부는 나이에 비해 생각이 깊고 현명했다. 답답한 궁을 벗어나 말 지기인 우앙과 함께 떠났다.
해들이 어디로 가는지 답을 찾기 위해 서쪽으로 가면서 백제의 부여구를 만났다. 나이 차이가 있음에도 그들은 친구가 되었고, 부여구와 내기를 했다.
구부가 연나라 모용황의 책사인 송해를 없애면 부여구가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후 구부는 연나라로 들어가 가까스로 살아난 모용황을 만났다.
그곳에서 송해와 학식을 겨루어 구부가 이겼다. 그 자리에서 모용황은 송해의 목을 쳐버렸다. 또다시 서쪽으로 가 조나라에 이르렀다.
그들이 머문 절에서 조나라 황제 석호가 있었다. 그에게서 지금 고구려가 전쟁이 났다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구부가 연나라를 떠난 뒤에, 모용황은 죽기 직전에 모용외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서 이복형제인 모용한을 만나 목숨을 이어 나갔다. 모용황은 다시 한 번 고구려를 정벌하기로 했다.
고구려 장수, 평강은 고국원왕을 유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드디어 신성에서 ‘무’는 연나라군을 크게 무찔렀다. 그러나 이는 미끼였다.
이미 대군은 환도성을 향하고 있었다. 이에 아불화도는 그들을 필사적으로 막았지만, 끝내 전멸했다. 파죽지세로 평양성으로 밀고 들어가 그곳에서 고국원왕을 생포했다. 치열했지만, 허무하게 연나라의 승리로 끝났다.
연나라는 고구려 태후(아영)와 왕후(정효) 볼모로 데려갔다. 고구려는 연나라의 속국이 되었다. 군대를 해산하고, 환도성의 성벽을 허물고 심지어 을불의 묘를 파헤쳤다.
이걸 보고도 사유는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고국원왕 40년이 되었다. 천하를 호령한 연나라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몇 문장으로 끝내기에 너무 허무했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드디어 대업을 이룬 모용황의 최후는 남루했다. 연나라가 무너지면서 태후는 다시 고구려로 돌아왔다. 왕후와 ‘무’는 함께 어디론가 사라졌다.
연나라가 지고 백제가 뜨고 있었다. 곧, 고구려로 쳐들어온 백제군을 무찌르기 위해 고부의 동생, ‘이련’이 나섰다. 오랫동안 전투경험이 없는 고구려군은 백제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매번 출전할 때마다 붙잡히는 치욕만 느낄 뿐이었다.
불리한 상황을 뒤집기 위해 고국원왕이 나섰다. 그는 홀로 적진으로 달려갔다가 화살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았다. 자신이 희생해서 전쟁을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
고부는 백제왕 부여구를 만나 내기에서 이긴 조건으로 군사를 물리라고 요구했다. 백제군이 돌아가고 고국원왕은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뒀다. 유언으로 5년간 전쟁을 하지 말 것을 남겼다.
“왕자 시절부터 태왕 재위 기간 내내 칠십 평생을 외로움 속에 살아온 태왕 고사유. 백성을 한없이 사랑하였으나 백성으로부터 외면을 당한 채 살아야 했던 불운한 군주.
어머니와 한 번도 속 깊은 정을 나누지 못한 불행한 아들. 아내와 살가운 교감을 해보지 못한 지아비. 평생 아우에게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야 했던 형.” 작가는 사유를 이렇게 정의했다.
사유가 죽기 직전에 꿈에 을불이 나타나 그를 어루만져 줄 때 뭉클했다. 평생을 외롭게 산 그가 불쌍했다. 백성을 끔찍이 사랑한 왕이었으나, 그의 행보는 아쉬움만 남겼다.
백성에게 활과 칼 대신에 삽과 곡괭이를 쥐여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물러날 수 없는 상황에도 더 물러나기만 할 뿐, 고구려를 지키지 못했다.
오히려 성벽을 쌓고, 희생된 백성을 모른 척하기만 했다. 모용황을 비롯한 연나라 군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려버린 대가가 너무 컸다.
“전쟁은 번갈아 따귀를 때리는 일과 비슷해요. 어느 한 쪽이 맞고 그만두어야 끝나는 거지요. 많은 사람은 자신이 때린 뒤 그만두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맞고 끝내려는 거예요.
즉 사람들은 거짓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고 아버지는 참으로 전쟁을 끝내려 하는 거예요.”
사유의 마음을 아는 사람은 바로 구부뿐이었다. 그가 자신보다 훌륭한 왕이 될 거라 믿었기에 목숨 바쳐 백제군으로 뛰어들 수 있었다.
과연 구부는 어떤 왕이 될까? 구부는 죽은 농부와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소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즐거웠다.
만나는 자의 성향에 따라 답은 달랐으며, 답을 찾으면서 성장하는 어린 구부의 모습이 희망적이었다. ‘고구려 5’는 결정적인 순간에 반전으로 허탈하고 답답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만 읽어야지 하면서도 어느 순간에 왼독해버렸다. 현재 6권까지 나왔으니, 딱 1권만 더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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