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은 지 3개월이 되었는데 이제야 쓰게 되었다.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기억이 가물가물해 쓰기가 싫을 정도였다. 이미 머릿속에 흐릿해진 책 내용을 억지로 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과연 얼마나 걸릴지... 벌써 걱정이 된다.
작은 지방 학교에서 오랫동안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졸업식 당일에 그 해 졸업하는 사요코가 비밀리에 학생을 지목하고 승낙하는 표시로 개학한 그날에 탁자 위에 꽃을 꽂아 둬야 했다.
학교 축제에 자신이 몰래 주도하여 연극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자신이 사요코라고 말하고 다니면 학생들이 저주에 받는다고 했다. 이 전통은 3년마다 행해진다.
첫 부분은 사요코로 지목된 여학생이 빨간 꽃을 두러 갔다가 자신 말고도 누군가가 사요코의 역할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후, 의문의 사고를 당해 학교를 나오지 않게 되었는데도 학교에선 사요코의 활동이 이뤄지고 있었다. 뭔가 무서움과 기괴함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또한, 중간에 뭔가에 쓰인 들개의 출현, 옥상 위의 의문의 여자아이가 나오면서 섬뜩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외에도 이름이 사요코라는 애가 전학 오게 되면서 ‘사요코’가 진짜 누군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일단 앞부분에 예상한 느낌들은 끝까지 이어가지 않았다. 음침하고 공포는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렸다. 중반부터 뭔가 10대 청춘의 느낌들이 물씬 나는 분위기가 나타났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전환되니 좀처럼 적응하기가 어려웠다. 가장 긴장되는 부분은 학교 축제 때 연극에서 어두운 강당에서 있는 학생들이 붉은빛과 노란빛에만 의지하여 대사를 읽을 때였다. 다음 차례를 기다리면서 어떤 불빛을 들어야 할지 기다리는 학생처럼 두근두근 거렸다.
드디어 그토록 궁금했던 것들이 풀릴 수 있을 거로 생각해서 더욱 몰입했다. 그럼에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해 불만이었다.
공포감을 조성하기 위해 던져 놓은 떡밥들은 전혀 회수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두루뭉술하게 끝나버렸다. 책을 덮고 난 다음, 개운하지 못한 기분을 씻어내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슈’라는 주인공은 사요코의 전설을 결정적으로 파헤치려는 순간에. 자신에게 고백했다가 거절당해 앙심을 품어 동아리방에 불을 질러 버렸다.
갑자기 토네이도가 등장해서 전개에 조금 방해되는 부분이라 답답했다. 어찌하다 결국 사요코의 전설의 내막을 알게 되었다.
이 학교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선생이 학생들의 개성을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전설을 만들었다. 책 읽는 내내 전학생 사요코를 의심했었는데... 괜한 사람을 의심하고 후비고 있었다.
전설의 시작은 선생이 했지만, 오랜 세월 동안 학생들이 이 전통을 유지하고 계승해왔다. 학생들을 위한 마음이 학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 엉뚱하고 멋진 전설이 이어져 오지 않았나 싶다.
내가 다닐 고등학교에서도 이런 전통이 있었다면, 더 재밌게 학교생활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남녀공학이 아닌 남고라서 힘들 수도 있겠다.
작가는 초중반까지 짜임새 있는 전개 구조와 속도로 아주 재밌었다. 살짝 간 보는 듯 사건들이 연달아 일어나 후반부에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굉장히 궁금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부치는지 느슨했다. 마지막까지 초심을 유지했었더라면 지금보다 더 후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책이 완성되었을 것이다.
작품 해설에도 작품의 의의와 작가의 의도만 설명되어 있을 뿐이라 다소 아쉬웠다. 그럼에도 이 책이 무려 20년이나 지났음에도 전혀 어색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표현이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에 보충, 보완하여 단편 드라마나 웹 드라마로 나온다면 더 재밌을 것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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