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인도네시아 작은 섬에 정착한 작가가 사물의 느낌들을 적은 글이다. 자신의 신념대로 유목민처럼 살기 위해선 어떤 것을 포기해야 하는데 바로 그것은 집이었다.
집을 포기하기 전에 집 안을 차지하고 있는 사물도 함께 없애야 했다. 하나씩 정리하다가 그 사물에 대한 느낌을 마치 중력이라고 표현했다.
비키니 옷장에 자신이 애지중지한 물건들을 집어넣어 언니 집에 보내버렸다. 바로 편도 항공권으로 홀연히 한국을 떠났다.
타인의 시선과 온갖 유혹에 휘둘리지 않는 작가의 추진력과 결단력이 내심 부러웠다. 여러 잔병이 있는 오래된 골든스타 TV, 울부짖으며 자신을 괴롭히는 냉장고, 그 아무도 관심을 끌지 못한 낡은 자전거, 소유한 물건 중 마음에 들어하는 손톱깎기, 헐값에 떠나보낸 트렌치코트, 끝내 자신의 연필깎이를 훔치듯 들고 간 직장상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보다 책에 스며들 수 있었다.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고찰하며 덤덤하게 쓴 문장이 좋았다. 읽는 내내 낡거나 유치하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중간에 가끔 내던지는 농담은 큰 웃음을 주지 못했지만, '피식'할 정도로 소소한 유머들이 있었다.
"혼자 있을 때도 라면을 냄비에서 국그릇으로 옮겨 담고 김치를 접시에 덜어 먹는 일, 그런게 바로 자신을 존중하는 방법이란 걸 알았다." , "내가 한때 사랑했고, 여전히 가치 있지만, 내게는 필요 없어진 물건이 다른 누군가에게 행운의 선물이 되어 다시 사랑받는 것. 그거야말로 내가 중고거래를 좋아하는 결정적 이유다."
자신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제대로 쓰는 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닐까? 한때 솟구치는 소유욕에 이끌려 자신의 것이 되었으나, 전혀 무용하게 쓰이는 물건들이 집안에 있을 것이다.
편리하고 편의 를 제공할 것만 같던 물건들이 오히려 번거롭고 불편해졌다. 갑자기 한순간에 몽땅 버리는 것이 '미니멀리즘'이 아닐 것이다. 버리는 것보다 쓰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면 그것이 바로 '미니멀리즘'이다.
이 책을 읽은 뒤에 문득 작년에 방을 대청소한 기억이 떠올랐다. 10년이 훌쩍 넘은 낡은 일기장을 오랫동안 방치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소중한 것들을 고이 모아둔 상자를 열어보기도 했다. 그 안에 전 여자친구들의 쓴 편지는 물론, 수능원서도, 선거운동증도 있었다.
친구들과 나눈 쪽지와 종이들도 가득했다. 손에 든 물건을 집을 때마다 그 물건이 품고 있는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한때는 '호크룩스'처럼 내 분신이었지만, 이젠 처리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박스 안의 반이나 되는 것을 덜어내고 빛바랜 일기장을 일일이 버리면서 그 속에 담긴 추억들도 함께 정리했다. 물건들을 비워냈을 뿐인데 마음까지 정리가 된 듯 정신이 맑아졌다.
"그것들의 가치, 한때나마 나를 흥분시킨 이유, 소비와 소유의 의미, 물건들과 나의 인연을 생각했다. 때로는 무책임한 소비를 반성했고, 때로는 애틋한 기분이 들었고, 때로는 새로운 물건들과의 인연을 상상하며 행복했다.
이 세상에 생겨나 나의 손을 거치고 어디론가 떠나간 사물들에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다." 작가는 원칙과 신념이 곧은 사람이었다. 사물에 접근하는 방식을 통해 작가가 추구하는 삶을 알 수 있었다.
사물을 통해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은 꽤 신선했다. "취향은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쓰면 허영이 되고 남을 무시하기 위해 쓰면 폭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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